시간표를 지키는 사람이 칸트라고 생각할 수 있다.


초등학교에는 초등학교만의 시간표

중학교는 중학교의 시간표

고등학교는 고등학교만의 시간표


대학은 대학생 본인이 강의수강 시간표를 만든다.


대학에 따라서는 

교수님들간 협의를 하여서 일정한 시간대에

강의를 맞춘다.


대학교마다 다르고

같은 대학교의 대학마다

또 시간표가 다르다.


교수님들이 시간을 협의하는 학교는 그러하다.

수강신청이라는 어떤 큰 틀은 있지만


대학교마다 시간표를 짜는 자율성이 다르다는 말이다.


교수님들과 같이 일하는 조교선생님들이 시간표를 만드는 보이지않는 손이 될 수 있다.


그렇게 교육기관마다 시간표가 다르다.


하물며 기업들은 어떠한가?


정해진 일의 양이 있다면

그 일을 하는데에는 사람마다 팀마다 시간표를 다르게 만들어서 한다.


업무를 처리하는 방식과 생각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이다.


자율을 주면서 상사의 입맛에 맞춰야 하는 기업도 있고

상사가 여러명이면

여러명의 입맛에 맞추면

다양한 요구를 충족할 수 있는 무엇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그런데


그 과정이 어찌보면 소모적인 것이 될 수 있다.

일을 순서를 각각 단계를 거치는 기업은

1층에서 일하는 사람이 3층을 만족하는 일을 하였는데

(물론 층이 5층이 되기도 한다.)

1층에서 더 올라가지 못하는 그런 상황이 있다.

물론

어쩌면 명문화 하지 않은 것을 만족해야 하는 것이고

사람생각이라 그때 그때 눈에 들기도 그렇지 않을 수 있다.

그럼 1층의 일을 하는 사람은 1층의 사람이 만족하는 어떤것을 또 만든다.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잘 모른다.

사람이라 업무적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하면

능률이 떨어지기도 한다.


궁극적으로 5층의 영역에 도달하여 일을 마무리 지을때에는

수치적으로 상상할 수 없는 시간이 소모되기도 한다.


지금까지의 기업은 직급이 올라갈수록 경력이 있고 처리권한이 넓은 그런 기업이 많았다.

지금은 많은부분 자체적인 권한을 가진 기업으로 분리 또는 합병 

같은것을 한다.

또는 그대로지만

권한이 분야별로 나누어지기도 한다.


그래서 각각의 직급의 결재를 순차적으로 받기도 한다.

각 직급에 맞는 무엇을 만들기도 한다.


사람은 여러 생각과 취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고객도 그러할 수 있다.


대체할 수 없는 어떤것을 계속적으로 써온 사람(고객)이 아니면

(흔히 말하는 백색가전의 백색을 비유해서 백색의 어떤 것이 아니면)

다양한 요구사항과 만족수준이 있다.


그래서 기업은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것이 큰 사업이 되기도 한다.


시간표 이야기를 하다가 기업 이야기로 조금 변질되었는데


시간을 이용하면서 많은 생각을 한다.

학생의 시간을 본인이 활용하여 만드는 시간표


대학은 그러하다.

대학 이외의 많은 부분이 있다.


사람은 많은 가치관을 가지고 살고있기 때문이다.


시간표를 가지고 사는 칸트같은 사람이든

시간을 자유의지로 사용하는 사람이든

같은 시간속에서 산다.


어쩌면 칸트는 본인이 하고싶은것을 하는 시간이 

일정한 시간대여서 칸트를 보는 사람이

칸트는 시간을 잘 지키는 사람이라고 관찰했을 수 있다.

나는 칸트와 이야기하고 같이 살아본 사람이 아니라서

알 수 없다.


시간표를 만드는걸 좋아하는 사람이든

그렇지 않은 사람이든

시간표를 만들고 잘 지키는 사람이든

시간표대로 잘 못지키는 사람이든

자연의 섭리에 맞추어 사는 사람이든

같은 시간 속에서 살고있다.


시간과

사람과


탁상공론과

항상 부족한 사람임을 잊지 않는다.


긍정적인 생각

생각

무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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